해외여행

터키로 가는 기차

kyoungs 2012. 2. 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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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배낭여행을 가라면  조금은 주저주저하거나 누구랑 같이 갈 것 같다.
무서운 일도 고된 일도 위기를 극복해야 할 순간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겁이 없었을까?  정말 무대뽀구나 라고 후회도 많이 했다.
보통 유럽은 동양인도 한국인도 무지 많다. 또한 여행하기 좋게 시설도 잘되어서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페인남부에는 가끔 북유럽은 거의 없고 그리스는 한 두명 터키로 넘어서면서 한국인은 아예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나는 터기행 기차를 타야 했다. 그리스로 들어가 아읏풋을 해야
했기때문이다.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여행친구들이 터키행을 모두 위험하다고 말렸다.  그 당시에(2000년도)
유고슬라비아는 내전이고 동유럽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거쳐가야하는데 살벌하다는 것이다.
이젠 정말 나혼자 여행을 했어야 했다. 보통 여행 일정이 맞으면 같이 여행을 하다가 헤어지는데
이 일정은 사람들이 꺼리는 일정이라고 보면 된다. 기차를 2~3일 내리 탄다고 보면 된다.
아까도 말했지만 유럽은 어디가나 한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지만 동유럽부터는 좀 틀렸다
걱정하는 여행동료과 인사를 하고 기차 출발시간이 다 되어 터키행 기차를 찾고 있는데 좀처럼
눈에 안뜨였다.  맙소사 시간은 없는데 저기 멀리 끝자락 터기행 기차라는 것이다. 정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열심히 뛰었다. 얼마나 긴지 10분이상 뛰어도 도달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차 놓치겠어
숨을 급하게 몰아쉬고 뛰는데 기차안에 많은 사람들이 얼굴 내밀고 손흔들면서 환호를 질러주었다.
영화도 아닌데 정말 한참을 뛴 것 같다. 그 기차 맨 두칸만 터키로 가는 것이었다.
차장이 저를 맞아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히딩크랑 인상이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또 맙소사 그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는 사람은 나 한명이었다. 즉 차장 한명과 저 혼자였다.
세상에 그 차장이 더 무서웠다. 나쁜사람이면 .......상상을 해봐라 그 기차에 차장과 여자
나혼자라니 정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거기다가 기차는 얼마나 낡았는지 화장실은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녹슬었고  바닥이 가깝게 느껴졌다.70년대 기차 같았다.
나는 차장할아버지랑 친해지려고 내가 사온 먹을거리 빵이며 치즈며 다 주었다.
카키색 이불을 주면서 창문도 커텐 쳐주고 밖에서 안보이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내부에서 문을 잠그라고 하고 암호를 가르켜주면서 절대 문을 열어 주면 안된다고 했다.
똑똑똑 세번 이래야 문을 열어주라고 했다. 그리고 사진은 절대 찍으면 안된다고 했다.
기차가 오래되어 바닥에서 찬기운이 엄청올라오고 그렇게 기차안에서 두 밤을 보낸 것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가족생각을 깊이 했고 모든신께 용서를 빌었다. 이번만 무사히 살려주시면 정말 착하게
부모님 말씀 잘 듣겠다고 그렇게 기도를 했다. 막 눈물도 나왔다. 차장할아버지가 제가 어려보였는지
무서워하지말라고 자상하게 해주어서 할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은 점점 없어젔고 나는 그분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역에 정착할 때마다 군복입은분들이 왔다갔다하면 제 여권을 검사해갔다.
그리고 국경을 넘어갈때 잠시 점검을 받아야 했다. 루마니아 불가리아는 우리 북한을 생각하면된다.
커텐사이로 비추어진 나라는 회색빛이었고 역은 거의 페허분위기였다. 사람들은  회색  옷을 입고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눈이 마주칠까봐 얼른커텐을 쳤는데 가난한 나라임에
틀림없었다. 집도 다 쓰려져 가고 나는 나는 이나라에 대한 지식도 없어 더욱 조마조마했다.
헝가리에서 떠날때 루마니아에서 일본인이 피살됐고 사람들이 많이 굷주려있어 위험하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정말 또 다른 세계였다. 기차안에서 본 풍경은 그러했지만 어떤 여행자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도
사람 사는 곳이고 아름답다고 한다.  그렇게 깊게 생각할 여력도 없이 무사히 이스탄불에 도착하기만
바랬다. 며칠후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 나를 보호해주려는 그 차장할아버지가 너무 고마웠다.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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